“때렸어야 했는데 마이크 꺼진 줄 알고 멘션하다가 안정환 씹다가 걸린 저 XX” 댓글 작성자

특유의 목소리와 뛰어난 해설 실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신문선 축구해설위원이 큰 인기를 끌자 갑자기 방송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많은 이들이 그의 근황을 궁금해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모습으로 포착돼 큰 화제를 모았다.

1958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연세대를 나와 축구 국가대표로 뛰었다.

이후 1983년 유공엘리펀트에 입단해 K리그 첫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프로게이머가 됐다.

1988년 축구계 은퇴 후 프로스펙스에 입사해 틈틈이 MBC 축구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당시에는 운동선수 해설위원이 드물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회사를 퇴사하고 전업 해설위원이 됐다.

게임 자체를 해석하는 대신 선수 특성, 이력 등 라쿠고식 해설을 내세웠고, 당시에는 없던 혁신적인 해설 방식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주요 축구 행사에 대한 논평에 전념하고 수많은 인용문을 만들었습니다.

“1000원에 1000원! 낙찰”, “골이다!”


그러나 그의 라쿠고식 축구 해설로 인해 골수 축구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고, 논란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선수들의 부상에 대한 오판이나 오판 등의 사건으로 무거운 루머에 시달렸다.


특히 2002년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에 PK 패배를 당한 안정환은 뒷담화를 했다.

결국 그는 200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스위스와의 골에 대한 오판과 오프사이드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자진 사퇴했다.

이후 교직에 전념하며 축구해설위원으로 MBC SPORTS+에 복귀하고 싶었으나 결국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지 못했다.


2016년에는 바둑 해설위원으로 출연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경기에 대해 해설했다.

지난해 그는 갤러리 디렉터를 맡아 큰 화제를 모았다.

축구선수, 축구해설위원, 바둑해설위원을 거쳐 결러리 감독으로 변신했다.


그는 미술 애호가로 수집가이자 갤러리 매니저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때 같은 동네에 살았던 박영선 화백 덕분에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유명한 누드화가여서 초등학교 때는 벽 뒤에 숨어서 작업실을 지켜봤고, 운동선수 시절에는 일본인 부잣집 친구 집에 갔다가 거실에 있는 조선시대 달시계를 보고 심장이 멈춘 줄 알았다.


그때부터 언젠가는 집에 달항아리를 차려놓고 예술을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981년 졸업 후 대우팀의 스카우트가 되었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신문선은 그때부터 미술품 수집을 시작했다.

미술을 그토록 사랑했던 신문선은 제주도에 집을 짓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살았다고 한다.

제주도의 한 집에서 섭섬을 볼 수 있는데 이 동네를 선택한 이유도 이중섭의 섭섬 그림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년 넘게 조그마한 예술 공간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국내 최고의 예술대학인 홍익대학교 근처에 마땅한 화랑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와우갤러리를 설립하고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과 함께 “한국 화단에서 손흥민을 찾자”는 마음가짐으로 신진작가를 발굴했다고 한다.

축구선수부터 회사원, 해설위원, 바둑해설위원, 갤러리 디렉터까지 많은 직업이 바뀌었다.

그의 다재다능한 재능과 열정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