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 패티김과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톱가수 하춘화는 인품이 좋기로 유명해 60년이 넘는 가수 생활 동안 큰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어릴 때부터 가창력을 인정받은 아버지 덕분에 7살에 데뷔한 하춘화는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인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개그맨 故 이주일과의 일화에도 등장한다.
하춘화는 과거 연예계에서 너무 못생겼다는 이유로 기피된 무명 개그우먼 이주일에게 “쇼호스트 없이는 못 한다”며 일자리를 줬다고 한다. 그 사람은 이주주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춘화 덕분에 유명해진 이주일은 훗날 “길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는데 하춘화 덕분에 집을 샀다”며 하춘화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평생 은인으로 화.
하지만 이주일은 큰 사고에서 하춘화를 구해 보답할 수 있었다.
1977년 tvN ‘생각만 해도 범잡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졌던 이리역 폭발사고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는 화약 30t을 싣고 온 열차가 위험물 운송 규정을 완전히 어겼을 때 발생한 것으로 전해진다.
담당 승무원은 관련 지식이 전혀 없었고, 철도 직원들도 관련 지식 없이 열차를 20시간 동안 억류하고 뇌물을 요구했다고 진술했는데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다.
에스코트는 기차가 정차하는 동안 술을 마시고 기차에서 촛불을 켜고 자다가 촛불에 불이 붙고 폭발물이 터졌다 고 말했다.

폭발로 59명이 숨지고 열차 잔해가 인근 4㎞까지 날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큰 분화구가 생기고 철로가 유실되고 민가가 파괴되어 7,8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사건으로 전해진다.
당시 이주일과 하춘화가 공연하던 극장은 폭발과 함께 불이 났다.

폭발은 하춘화의 공연이 시작된 지 약 15분 만에 일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쓰러진 하춘화를 본 이주일은 하춘화를 업고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검진 결과 하춘화는 무사했지만 구조한 이주일은 두개골이 무너지는 중상을 입고 4개월 이상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이주일은 ‘하춘화를 구한 사나이’로 이름을 알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하춘화는 이후 방송에서 故 이주주를 추모하며 약 10년 동안 하춘화와 7000회가 넘는 콘서트를 함께하며 각별한 우정을 쌓았다고 밝혔다.
암 투병 중이던 이주일과의 마지막 만남을 고백하며 “아쉽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그리움을 드러냈다.
이주일은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말투와 얼빠진 표정으로 만담이나 스탠드업 코미디를 주로 소화했다.

하춘화에 의해 유명해진 그는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한 유일한 연예인으로 정치인들도 쟁탈전을 벌일 정도라고 한다.
이주일이 활동하던 당시에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사실 광대나 광대 취급을 받았다.
당시 재계 1인자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친분이 있었고, 사장과 재계 1인자가 먼저 찾아올 정도로 유명했다.

흡연자로 알려진 그는 결국 2001년 폐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어 “담배 맛있어요? 이것은 독입니다. 하루에 두 갑 피웠다”, “흡연은 가정을 망친다. 사람들.
폐암 진단을 받았을 때 의사로부터 3개월의 제한수명을 선고받은 이주일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월드컵 개막 6개월을 앞두고 고국에서 월드컵을 볼 수 없다는 두려움에 눈물까지 흘릴 정도로 축구를 사랑한다.

의사에게 월드컵 보고 죽자고 했고, 운 좋게도 2002한일월드컵 때 휠체어를 타고 준결승 레전드를 볼 수 있었다.
안정환은 이탈리아전에서 골든골을 터트렸을 때 암을 이겨내고 건강을 되찾겠다며 기뻐했다.
불행히도 그는 2002년 8월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